어린 시절 본 고향의 장례 풍습의 기억
내가 바라본 회갑 잔치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지금 시대의 모습하고는 아마도 10년은 더 연세가 들어 보이는 모습이었으리....
회갑 잔치 하실 때는 면의 친구분들을 비롯한 아시는분들이 거의 모두 오시는 것 같았었는데 오실 때 부조금으로 기억에
누런 종이 봉투에 든 풍년초1봉 장례때는 3개들이 양초1봉으로 기억이 됩니다
일가 가까운 친척중에는 결혼식 3~5일전부터 오셔서 묵으시면서 등잔불 밑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얘기꽃을 피우신다
등잔불 바닥에 놓인 큰 성냥통에 담뱃재를 잘못 떨어서 뻥하면서 터뜨리기도 가끔은 하지만.....
장례풍습
초상 소식이 마을에 알려지면 온 마을 주민들은 수행하던 모든일을 중지하고 초상집에 모여든다.
일단은 초상 소식 즉 부고를 전 할 사람들을 각 지역별로 차출하고 면사무소에 가서 등사기에 복사를 하여
봉투를 가지고 출발한다. 대개의 집 사랑채에는 부고 받는 함이 있거나 아니면 처마에 꽂아둔다
부고는 좀 머슥하다고 안채까지는 가지고 가지 않는다
먼 친척은 우체국으로 가서 전보로 타전하여 타계 소식을 알리고 동네분들끼리 상부상조로 만든 막걸리1말계,
쌀1되계 등의 유사들은 자루를 가지고 나가고 아이들은 초상집을 밝힐 사각함에 넣은 호롱불 혹은 유리로 만들고
기름 심지를 이용하여 비교적 밝은 호야를 구하여 오고 한편에서는 손님 접대용 상을 구하러 간다.
고인의 이름이나 아호를 3번 부르고 옷을 지붕으로 던지는 초혼이 끝나서야 비로소 곡을 하게 된다
이때쯤이면 동네사람들이 모여 상주와 함께 일정이며 하여 할 일들을 협의하여 동리분들 각기 임무를 분담하여 시행하게 된다
초상이 나는 날부터 초상 마칠때까지는
1. 모든 농사일은 올 스톱
2. 도랑에서 빨래 금지 하면서 온 동리분들이 한마음이 되어 슬퍼하며 장례를 상부상조하여 치루게 된다
지관과 함께 산에 가서 묘자리를 파서 장지를 준비하는가하면, 집에서 돼지를 사다가 잡아서 삶고 순대에 넣을
부재료를 준비하여 삶으면서 싸리나무로 찔러 보면서 익은 정도를 파악하는가하면, 관을 비롯하여 준비하여야
할 물품 구입팀이 있고 동네마다 한곳씩 있는 상여집에서 나무 상여를 운반하여 오기도 한다.
초상은 결혼식에 비하여 조금은 갑작스레 나지만...
암튼 음식 준비로 오시는 아주머니 어른들은 집에서 주로 솥뚜껑을 들고 오셔서 준비한 삼발이에 걸고는 고소한
냄새를 피우며 부침개 혹은 주치로 물들이는 빨간 동그랑땡을 준비한다.
이때 코흘리개 아이들 중 용기있는 아이들은 엄마한테 달려가서 부침개를 얻어 단꿀 먹듯이 먹지만 좀 내성적이며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들은 아예 얼씬도 하지 않는다
(기제사를 보통 첫 닭이 울고 난 후에 모시는데 어른들은 졸려도 참고 있지만
아이들은 잠이 들게 되는데 제사 모시느라 덜거덕 거리고 문을 열어 놓으니 잠이 깨어서 자는척하고 누워 있을 때 제사후 음식 때는 쌀밥인기라 또 반찬도 평상시보다 많고한데 야얘이! 일어나서 밥 먹어라! 그 말 한번이면 그냥 벌떡 일어나서 먹을텐데
쟈는 자게 내둬라! 용기없어 못 일어나면 입에서 웬 침은 그리 많이 생기고 침 넘기면 그 소리는 왜 그리도 크든지요)
사람은 죽으면 남은 사람은 바로 먹어야 되고 또 먹을것이 있으니.....
또한 주비가 부담이 가니 막걸리를 담그는데 100% 집에서 제조하면 면소재지 양조장과 사이가 안 좋아지니
구입과 제조를 5:5 정도하여 구입하기도 하고 집에서 제조하기도 한다
동네 어르신 아주머님들은 바늘을 가지고 오셔서 길쌈으로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둔 삼베로 수의, 망건과 상복을 만들고 손주들은
흰두루마기를 만들고..이렇게 밤이 이슥하도록 준비하고 그 동안 못다 한 이야기와 객지에서 부음 듣고 들어오는 마을 출신
출향인 혹은 친척 사람들이 오면 이야기꽃을 피우다 배가 출출 할 때 쯤 되면 팥죽을 쑤어서 버지기에 가득 밤참을 쑤어 오는
집도 있답니다
애상이 아닌 호상이면 3일밤째는 친구분들이 황종이로 망건을 만들어 쓰고는 상주와 같이 곡도 해 주면서 장난을 걸어 부모님 보냄 서운함과 피로를 조금이라도 위로를 해 주기도 합니다
장례날에는 상여가 준비되고 관이 운구되어 상여에 안착 될 때까지 곡이 그치지 않고 특히 박자 맞추어 잘 우는 딸이 구슬피
울땐 동네 분들 눈시울을 붉게 달구어 줍니다. 발인제를 지내고 선소리꾼의 구슬픈 선소리에 맞추어 상여꾼(동군)들이 각기
자리를 정하여 정위치에 서면 상여를 지지한 고정목을 빼면서 운구를 하게 되는데 동군에게는 고무신 1켤레와 장갑 혹은 나중에는
장화, 운동화를 주어 노고를 치하 해 주고 또 상주는 부모님 잘 모시라고 막걸리와 안주를 준비하여 대접하면 상여는 평생을 살아 온 정든집을 떠나 장지를 향하여 출발한다.
이때 동네에 임신이 안되는 아주머니가 있으면 상여를 타면 임신이 된다는 말이 있어서.타기도 하였다네요!
상여를 앞세우고 상주들이 주욱 따라 가면서 곡을 하며, 동군들은 선소리에 맞추어 "어하 어하 어허야!"를 부르면서 떠나고 여자 상주들은 싸리문 삽작까지만 배웅한다.
이미 장지에는 손님 맞이용 간이 접견소와 부조 담당상이 차려지고 다녀 가는 손님에게는 술 한잔과 미리 종이로 묶어둔
담배 3개피 드리고.... 식사 장소로 내려가서 친구들 만나면서 주로 돼지국밥을 점심으로 들게 된다.
장지에도 음식을 담아주는 가방이라는 곳이 마련되어 모든 음식을 골고루 담으면서 음식 조절을 하게된다
장지 담당꾼들은 매장 준비를 다 해 놓고 이니면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상여가 도착하면 지관이 시간과 방위를 맞추고 하관을 하고 상주들이 시토를 하면 매장을 시작하면서 산소 앞자리에 설치한
기준 잣대에 맞추어 묘지의 방향을 잡아 나간다
흙을 덮고 봉분을 만들어 나가면서 선소리에 맞추어 “어허야 달구야”를 외치면서 흙을 아주 단단히 밟아주면서
상주도 부르고 가까운 친척도 부르면서 작대기에 걸어 둔 새끼줄에 돈을 걸어라고 장난도 친다.
이렇게 산소의 봉분이 완성되면 봉분제를 지내고 장례식은 대미를 장식하게 되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집에서 상을 차려서 매혼제를 지내고 출입문 양쪽에 새끼줄로 감은 기둥을 세우고 빈소방을 만든다
이렇게 되면 초하루와 보름 아침 일찍 밥을 하여 반찬과 약주, 담배등을 조상님께 두리고 곡을 하고서야 식구들이 아침을 먹게된다
이렇게 1년뒤에 소상과 그 1년뒤에 대상을 치루면서 빈소방의 상을 철시하면서 3년상이 끝나게 된다
3년상째는 대상이라하여 역시 면민들이 참여하여 성대하게 치르는데 혹은 일행에 맞추어 상에 음식을 차려서 드리면 아시는 손님들이 서로 권하면서 접대상 음식을 다 드시면 탈반상 이라하여 콩나물 삶아서 고춧가루 벌겋게 무친 것이 주된 재료인 상이 나가면 약주 즐기는 분들의 안주가 된다. 이때 손님들은 본집에서 다 수용이 안되면 앞집, 뒷집과 옆집으로 각기 안내되어가고 심부름하는 젊은이들이 담당을 하여 상과 술등을 나르면서 서빙을 담당하게 됨
동네 어르신 한분이 모친 돌아가신 후 아주 대단한 용기와 결심으로 1년만에 빈소방을 철거하였는데 굉장한 사건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그 선구자가 된 방법을 다 따라하게 되더라구요!
이렇게 변천을 하여 상차림에서 결혼이든 제사든 도시락으로 변하고 손님 접대용 담배도 2개피에서 3개피 5개피 하다가
1갑으로 세월이 가면서 바뀌고
지금이야 장례예식장에서 인륜지대사를 거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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